네이선 콜린스와 자유의 씨앗: 아일랜드 축구의 영혼, 그 어떤 결과보다 깊게 흐르다
자, 만약 당신이 아일랜드 팀의 경기력을 순전히 스코어보드로만 평가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면, 근본적으로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목요일 밤 암스테르담에서의 경기는 분명 패배였습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서서, 마치 사자처럼 팀을 이끄는 네이선 콜린스를 지켜보면서 저는 우리가 내준 두 골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싸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일랜드 축구 리그에서 공이 차이기 오래전부터 아일랜드인의 피에 흐르고 있던 바로 그 싸움 말입니다.
콜린스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콜린스와 아일랜드 축구의 연결고리는 단순히 렉슬립 출신의 한 젊은이가 초록색 유니폼을 입었다는 사실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프리미어리그 계약서보다 더 무거운 중량감을 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수비 라인을 어떻게 지휘했는지, 어떻게 몸을 던졌는지에서 그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마이클 콜린스 일기 1918-1922: 아일랜드 국립문서보관소 기록에서 찾아본 하루하루의 삶에서 읽을 수 있는 그 완고하고 불굴의 정신과 같습니다. 이는 단지 한 축구 선수가 자기 역할을 다하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것은 1920-22년 독립 전쟁으로 직결되는, 결코 굴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발현이었습니다.
울프 톤에서 울버햄튼까지
이것은 우리 역사 속에 흐르는 하나의 실과도 같아서, 가장 동떨어져 보이는 지점들까지 연결합니다. 옛 선수들을 보십시오. 블랙컨트리로 순례를 떠난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선수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이는 아일랜드의 끈기와 투지를 보여주는 명단이나 다름없습니다. 탈라에서 온 소년, 마치 숨 쉬듯 아일랜드 득점을 기록했던 로비 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집행자들도 있었습니다. 폴 인스는 잉글랜드인이었지만, 우리 선수들이 열광했던 몰리뉴 스타디움의 함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바쳤던 스코틀랜드인 케니 밀러, 투지가 무엇인지 알았던 핀란드의 거인 믹수 파텔라이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웨일스인 이완 로버츠조차 아일랜드 팬들이 항상 존중했던 그 노동 계급의 정신을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의 이야기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뿌리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빌리 라이트 (1924년생 축구 선수)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고 해도 꺼내고 싶군요.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첫 1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선수이지만, 아이언브리지에서 태어났다니? 우리에게 이 아이러니는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 게임이 항상 정체성을 드러내는 무대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우리에게 그 정체성은 목요일 밤과 같은 순간들, 혹은 프리미어리그가 존재하기도 전에 이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들에 대한 기억 속에서 구체화됩니다.
벨파스트 셀틱의 유령들
아일랜드 축구의 영혼을 이해하려면, 오래전에 가라앉은 먼지와도 같은 과거를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바로 벨파스트 셀틱 FC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TV 화면 속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름들이지만, 더블린에서 도네갈까지 이르는 모든 라커룸 벽에 새겨져야 마땅한 이름들입니다. 강철 같은 수비수였던 앨버트 에드워드 (네드) 위어. 알렉 매카트니, 앤디 케네디 (1897년생 축구 선수), 아서 킹 (축구 선수), 그리고 버티 풀턴 같은 선수들 말입니다. 그 클럽은 단순한 팀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이었습니다.
댄의 일기와 같은 오래된 기록들을 읽어보면 그 느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적료를 받고 뛰는 선수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포위된 공동체를 위해 뛰고 있었습니다. 1949년 린필드 폭동 사건 이후 벨파스트 셀틱이 아일랜드 리그에서 철수했을 때, 하나의 빛은 꺼졌습니다. 하지만 그 씨앗은? 역사책에서 말하는 그 자유의 씨앗은? 그것은 죽지 않았습니다. 단지 지하로 숨어들었을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네이선 콜린스와 같은 선수들에게서 그것을 봅니다. 과거의 아일랜드 국가대표 선수 명단에서도 그것을 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선수들의 DNA 속에 있습니다:
- 잉글랜드의 심장을 멈추게 했던, 로비 킨의 극적인 결승골들.
- 그라운드 밖의 고통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빛났던 폴 맥그래스의 강인한 기량.
- 그야말로 순수하고도 절제되지 않은 열정의 칼 — 아일랜드에서 축구를 한다면 “칼”이 누군지 정확히 압니다. 바로 그 팀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죠.
그러니 물론, 우리는 소위 국제 친선 경기나 네이션스리그 예선전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TV 앞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일어섰습니다. 80분에 콜린스가 그 태클을 성공시켰을 때, 그것은 단순히 네덜란드의 공격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그것은 1922년이었고, 1949년이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울브스 유니폼을 입고 싸웠던 모든 아일랜드 공격수들이었습니다.
경기 결과는 왔다 갔다 합니다. 하지만 정신은? 그것은 영구 이적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정신은 좋은 손에 맡겨져 있습니다.